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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성지의 역사

천호성지의 역사
천호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해 천호산 일대에 들어와 신앙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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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회개

관리자 | 2017.06.26 10:31 | 조회 302

베드로의 회개

작가 미상 / 최영철 바오로 기증(영월 종교미술 박물관)

스테인드 글라스 윤인복 / 인천 가톨릭대학교 그리스도교 미술대학원 조형팀



성물 박물관에 들어서면 수난의 방을 지나 부활의 방으로 가는 길목에 머리를 다리 사이에 묻고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만난다. 그의 등 뒤로 울고 있는 닭이 새겨진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는 이 햇살 아래서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일까?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의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인간을 두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한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으니 그런 사람이 이루어 내는 삶 또한 짐승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집회서는 두 가지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말한다. ‘죄로 이끄는 부끄러움도 있고 영광과 은총인 부끄러움도 있다.’ (집회서 4,21) 죄로 이끄는 부끄러움은 하느님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에게 집착함으로써 생기는 자기혐오이다. 영광과 은총인 부끄러움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식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회개의 모습이다.

유다와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함께 그분을 따랐던 제자였지만 똑같이 스승을 배반하였다. 한 사람은 남 몰래 예수님을 팔아 넘겼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의 면전에서 그 분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지막 운명은 달랐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느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이다. 유다의 부끄러움은 자신의 죄 속에서 소멸해 버리는 멸망이었지만 베드로의 부끄러움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총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무엇이 이 두 배반자의 운명을 다르게 만든 것인가?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배반 했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했기에 회개의 눈물 끝에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고, 그 용서를 바탕으로 무서운 박해 가운데서도 스승의 말씀을 열심히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기 자신을 혐오했고 베드로와 똑같이 통곡했을 것이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주님 앞에서 인정하지 못했기에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살로 끝을 내고 만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만 몰두했고 끝까지 자기 자신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마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살았던 사람이 부럽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당당하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무치(無恥)인 것이다.

회개의 은총을 구하는 사순절에 고개 숙인 베드로에게서 부끄러움의 은총을 배운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