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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성지의 역사

천호성지의 역사
천호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해 천호산 일대에 들어와 신앙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비롯되었다.

천호성지 전체지도


     

메멘토 모리

관리자 | 2017.08.11 13:50 | 조회 255


천호 성물박물관 수난실




메멘토 모리

김영수

 

가을은 풍성함과 쓸쓸함이 함께 어우러져 오묘한 조화를 빚어내는 계절입니다. 한 여름, 목이 타는 뙤약볕 아래 여물어서 그득한 결실들과 그 무엇도 남김없이 낮게 낮게 조락하는 이중성이 만들어내는 신비를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극명하게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서로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몫을 다하는 엄중한 몸짓이라는 것을 보아내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묵상하며 생각의 고요 속에 잠기게 하는 것이 가을의 영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교회는 이렇게 성사적 여건이 충만한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묵상하고 기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전쟁에서 개선한 장군 시가행렬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를 큰소리로 외치게 했습니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이 말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다. 그러니 겸손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운명에 대해서 신중하고 진지했던 고대인들의 정신성을 느끼게 해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죽음은 삶의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대면하는 사람은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겸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생명가운데 살아있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내가 할 일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며 무엇을 지켜야하고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무엇에 자신의 존재를 정향시키며 살아야하는 지를 애써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허무하게 낭비한 시간들을 되돌리기 위해서 오늘의 삶에 깊이 충실하며,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 높게 빛나는 것들만이 아니라 낮게 드러누운 것, 버려진 것, 비워있는 것들을 투명하게 바라볼 줄 알고 그 안에 감추어진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삶은 불안하고 어둡기만 합니다. 오직 잘 먹고 잘살려고 억척스럽게 애쓰지만, 그의 삶은 자신의 그림자를 피해 달려가는 것과 같이 속절없이 스러져 버리고 맙니다.

겨울, 땅이 얼어붙어 죽음을 더 시리게 의식하게 되는 차가운 날이 오기 전에, 당신 몸으로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믿기만 하면 그 비참한 죽음의 문이 아닌 생명의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앞장서 주시는 주님께로 바짝 다가서는 위령성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음은 눈에 보이는 생명의 매듭이며 영원한 삶의 시작임을 알고 산다는 것은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생명의 차원이지요. 죽음을 넘어 참된 삶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에 만날 수 있는 천호 성물박물관에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도달하신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며, 내 삶 속에 드리워진 십자가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부활의 빛으로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